"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19:4)
모세의 목적은 사람들이 시내산이 있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도록 인도하려는 것이었다. (출 3:12) 곧장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려는게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만남보다 축복에 목적지를 맞추게 되면 그 동기가 옳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의 놀라운 차이점이 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심한 학대를 받았다. 그들은 빈민가에 살았고 낡아빠진 옷을 입었으며 등에는 감독자의 채찍에 맞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낫으나 광야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거듭 불평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민 14:3)
반면에 모세는 편안하고 호화로왔던 왕궁의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 또한 애굽을 떠나 그들과 같이 광야의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는 한 번도 불평하거나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는 창조주로부터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특권을 가졌다. 이스라엘도 비슷한 기회가 있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다.(출 20:19)
하나님을 추구하는 목적에 차이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애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신의 유익이 우선이었다. 내 유익을 신앙의 목적지로 삼으면 노선을 이탈한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소서" (출 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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