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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2:20-24

 관리자
2010.02.17 07:20:50 :3121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 



성도들 가운데에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놓치고 일부 성경구절을 곡해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시되는 이단교리에 오염되거나 혼동하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단교리는 “우리의 구원은 불확실한 것이어서 행위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든가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가 나오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실지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거침없이 당신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분열을 꾀하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이단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주로 성경에 있는 경고의 말씀들을 제 고집대로 해석함으로 발생되는데, 경계해야할 성경구절을 주의하지 못하다가 우리가 받은 진리에서 벗어나는 어리석음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 성경해석의 제1원리는 성경은 성경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하신 말씀이며 정확무오한 것이므로 언제나 어떤 해석을 하는 때에라도 성경안의 어떤 구절들과 비교하여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또한 제2원리는 전후문장을 살펴 어떤 의미의 진술이 되고 있는지를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성경말씀을 깨닫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는 것이라 해서 어떤 구절이 전후문장과 상관없이 해석되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 10장26-27절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10:26-27)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를 지으면 심판 받고 지옥 간다고 했으니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지으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이단교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짐짓죄란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짓는 어떤 특별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문맥을 좀더 살펴보면 짐짓죄는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9) 


히브리서 10장과 관련하여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은 이 말씀이 일상적인 생활에 있어서의 죄와 실수를 언급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전체는 믿음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히브리 그리스도 인들의 문제는 실제생활이나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보다도 유대주의로 되돌아가려는 경향과 성전에 가서 번제와 희생을 드리러 되돌아 가려는 경향이 있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교리에서 멀어져가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외형상 믿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적이 없었던 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조심스럽게 문맥을 숙고하면 진정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원리에 대한 예증입니다. 


이제 베드로후서 2장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벧후 2:20-22절 말씀은 종종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되었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진다」는 뜻을 잘못 이해한 자들은 이 말씀을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세상의 죄악 가운데 사는 자로 해석하여 돼지가 씻었다가 다시 더러운 구덩이 누웠다는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이 죄를 짓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라고 한 후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극단적 성화교리를 은근히 주장하는데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영원히 멸망받지 않는 다는 절대 진리(요17:9-12)【대한 그리스도복음선교회 홈페이지 성경공부란의 ‘우리의 믿음’ 참조】에서 벗어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성경은 성경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새겨야 합니다. 또한 전후문맥을 숙고 해 보면 벧후 2장20-22절 말씀은 구원이후의 일상적인 죄를 지적하여 은혜에서 떨어지는 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진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벧후 2장 1절에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할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2:1) 


우리가 조심스럽게 벧후 2:20-22의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어려운 난제가 풀릴 것입니다. 


더러움을 피했다는 것은


먼저20절에 세상의 더러움을 피했다는 의미를 파악하려면 벧후1:4절의 말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베드로는 여기서 신의 성품에 참여한자들인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구원의 표인 침례를 뜻한다는 베드로 전서 3;21절과 충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 둡니다.) 

그는 그들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세상에서 썩어질 것에서 피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2장 끝절에 있는 사람들은 더러움에서 피한자들로 의도적인 진술이 되고 있는데, 이들은 결코 썩어질 것으로부터 벗어난 적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더러움은 겉을 변하게 하는 말로, 썩어짐은 그 안에 있는 본질을 다루는 용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돼지가 씻었다가


따라서 “돼지가 씻었다가.”라는 말은 그들이 겉으로는 씻었다는 말입니다. 돼지가 씻었다는 말을 헬라어 몇구절 인용(예를들면 계1장5절)하여 무조건‘죄를 씻었다’ 즉 ‘구원 받았다’는 말로 적용시키면 비극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씻었다”(λ ου′σαντι) 는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어떤 의미와 문맥으로 쓰고 있느냐에 따라 그 해석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최근 헬라어를 공부했다는 사람들에 의해 교회 안에 이단교리가 들어온 것도 바로 이러한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원어를 연구함에 있어서는 단편적인 단어연구 보다는 구문론을 비롯한 문법지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데, 근자에 행해졌던 일부 원어성경을 해석했던 사람들의 실태를 보면 문법지식을 도외시 한 채 성구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가며 매우 기초적인 지식에 의존하여 자의적 해석을 함으로써 더욱 혼란을 가중시키며 교회를 어지럽혔던 것입니다. 


영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이는 단어를 사전에서 열심히 찾아도 영어가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것처럼 원어성경의 단어를 찾아가는 정도로는 원어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전후문맥을 살펴보는 능력이 없는 상태로 단어가 문맥 속에서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알지 못하면 원문을 크게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단교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거기에 지적교만까지 들어오면 빈깡통이 요란스럽다는 말처럼 되는데, 본인은 원어성경을 본다고 지식적인 것으로 성경에 접근하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러한 사람의 세상 지식수준 한계를 드러나게 하여 부끄럽게 합니다. 


사실 원문의 뜻을 잘못 해석하면 개역성경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보다 더 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에 대한 통찰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돼지가 씻겨지고 더 이상 구덩이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돼지는 여전히 돼지입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하등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사도가 말하는 것은 이 사람들은 잠시동안 더러움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것입니다. 거짓회심한 술고래들인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현상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잠시동안은 그저 단순하게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도에 그치고 복음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진정한 거듭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경우가 바로 이것입니다. 중생한 사람들에게 묻어서 조류처럼 들어오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잠시동안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였지만 믿음을 지탱하지 못하고 완전한 배교를하는 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죄가 나오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니 지옥에 간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경건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아, 욥, 다니엘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서 죄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노아는 홍수 후에 포도주에 취했고,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다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또한 다니엘도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 할 때”(단9:20)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는 것이지 그 이후에 죄를 짓지 않는 자신의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로 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이단교리이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뒤에서는 자신도 남을 판단하며 무수한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최면에 걸린 영지주의자일 뿐입니다. 


귀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자


이제 베드로 후서 2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벧후 2;22절을 보면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저희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맥은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알아야합니다. 해당 단어나 문장 자체만 가지고 해석하다보니 심각한 오류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희는 베드로 후서 2장1절부터 언급된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이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거짓선지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유다서에 기록된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며 성령은 없는 자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자의 의미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1;4) 


그리하여 베드로후서2:12-13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피값으로 구속을 받아서 중생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 후서 2장에 관한 설명인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교회는 바로 지금까지 언급한 극단주의 성화파에 오염된 이단교리를 가지고 있던 자들로 인해 모임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교리가 교회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성도들은 말씀을 제대로 정리하고 있어야 할 것이며, 각 지역교회들은 이러한 이단교리를 갖고 있는 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르침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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