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히 12:6)
헬라어 원어에서 '징계하다'는 단어에 질병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병들게 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드로비모를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다는 구절을 인용하여(딤후 4:20) 신유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일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석치유도 있지만 점진적인 치유도 있습니다. 점진적인 치유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있어야 하기에 점진적인 치유가 된 사람들은 종종 강한 믿음을 발전시킵니다. 드로비모가 겉에 나타난 것으로 보자면 여전히 병든 상태였지만 치유의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는 말도 성경은 이것이 질병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주석가들에 의한 견해일 뿐입니다. 그것은 그를 쳐서 괴롭게 하는 사탄의 사자였습니다.(민 33:55 참조) 바울이 가는 곳 마다 마귀가 그를 대적하여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 주장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얼마나 많은 계시와 환상을 받았는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고후 12:7)
징계하다는 단어의 의미는 인정받는 헬라어 학자인 '로버트 영'박사와 W.E.바인에 따르면, '아이를 훈련시키다, 교육하다, 가르치다'라는 뜻입니다.
아기가 가르침을 받고 교정을 받아야만 건강한 자녀가 되고 올바른 성인으로 자랄 수 있듯이 어린 그리스도인은 가르침을 받고 교정을 받아야만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잘못된 자세는 그냥 고쳐지지 않습니다. 교정(바로 잡음)이라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교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교정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훈육과 다스림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 12:11)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십시오.(히 12:12-13)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약(medicine)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 4:20-22)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거나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우쳐주시고 용서해 주셔서 하나님의 더 크신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훈계', '훈육'이라는 말은 강요된 배움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을 때 강요된 배움이 일어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미래가 있다는 것이며, 아직 더 좋은 것이 올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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